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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조회 수 1073 추천 수 0 2017.06.09 08:53:29

# 레몬 _ 2016.08.06



  '현'에게 '레몬'이라는 주제어를 받고서 쓰고 지우기를 세시간쯤, 엉킨 실타래를 어떻게 풀까 하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폭염 속에서도 나무들은 푸른 잎으로 작은 바람을 타며 유유히 여름을 즐기고 있다. 지금이 아니면 못들을 테니 맘껏 즐기라는 듯 신나게 울어 재끼는 매미의 소리도 들린다. 



  레몬이라는 것도 이처럼 자연에서 온 한 과일일 텐데 그 아이를 자연에서 본 기억이 없다. 늘 쌀국수 위에서, 생선구이 곁에서, 보드카나 칵테일 잔 옆에서만 수없이 봤을 뿐. 결국, 나는 레몬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킨은 먹어 봤지만, 막상 닭은 실제로 본 적이 없는 것과 같다고 할까. 



  다시 시선을 옮겨 모니터를 바라보며 하찮은 글자들을 지우고 레몬이라는 글자를 써본다. 신맛과 다른 맛을 비교하여 써볼까, 상큼함의 대명사이니만큼 젊음과 늙음에 대해 써볼까, 이름만 들어도 침이 고이는 반사작용처럼 남들과 다른 개성에 관한 얘기를 해볼까 등등 많은 주제를 생각해본다. 



  하지만 전부 익숙한 레몬의 속성을 이용하려고만 하고 있었다. 나만의 시선이 담긴 본질은 온데간데없고 껍데기만 가지고 노는 기분. 얄팍한 술수로 꾸역꾸역 완성한다고 해도 누구나 쓸 수 있는 평범한 글이 되고 말겠지.



  피아노 앞에 앉아 종일 곡을 쓰다 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공부와 다르게 음악은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다고 해서 좋은 곡이 완성되는 건 아니라는 것. 같은 멜로디를 들어도 다른 느낌이 올 때, 많이 쓰던 단어를 봐도 여느 때와는 다른 감정이 들 때, 그 느낌을 멱살을 딱 잡고서 단숨에 이어가야 곡이 완성된다. 본디 작가의 시선은 자신의 깨우침에서 시작인데.. 



  난 레몬에 관한 글을 쓰고 싶은 걸까 아니면 주제가 레몬인 좋은 글을 쓰고 싶은 걸까. 레몬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좋은 글을 쓸 수 있을까. 레몬아, 널 잘 알지 못해서 미안한데 사실 형이 요즘 음악이 뭔지도 잘 모르겠거든. 해가 지면 보드카 옆에 있는 너를 두고 물어보고 싶구나. 이런 내가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 





같은 제목 아래 서로 글을 쓰고 나눠 읽으면 좋겠다 싶어

가까운 글쟁이인 '현'에게 제안 - 수락 - 으로 시작된

이름하여 '두 개의 시선' 중에서.. 


* 현꾸의 '레몬' : http://blog.naver.com/mini_dragon_/220778112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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